요리

[스크랩] 봄에 먹는 파김치 맛

pa5355 2007. 6. 2. 12:22

 

 

"여보, 쪽파 뽑아 파김치 담자."
"나 바쁜데, 파김치 타령이에요?"
"지금 담그면 아주 좋겠구먼."
"내참! 그럼, 당신이 알아서 해."

아내의 반응이 영 신통찮다. 컴퓨터 앞에서 옴짝달싹 않을 태세다. 만날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은지, 요즘은 컴퓨터를 아예 독차지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아내는 일복이 많다. 새 학기 들어 인근에 있는 대학에 강의를 맡았다. 또 상담소 일에 책임을 맡아 늦기가 일쑤다. 주말이면 자취하는 애들 챙기느라 서울 나들이도 잦다. 거기다 가끔 텃밭 일까지,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국이다. 스스로 원더우먼이라나.

아마 오늘은 일주일에 이틀 나가는 강의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괜히 말을 꺼냈나 싶다.

열흘 전, 우리는 텃밭에 있는 쪽파로 '파숙지'를 해먹었다. 새움이 올라온 쪽파를 데쳐 나물로 무쳐먹었는데 색다른 맛이었다. 그리고 파김치를 담가먹기로 했는데 아내가 딴전을 피운다. 파김치 담그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지라 뒤로 미뤘으면 하는 눈치다.

이럴 땐 하는 수 없다.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내 좋아하는 것을 먹으려면 일을 벌여 놓을 수밖에. 이런 저런 준비는 내가 하고 맛을 내는 일은 아내에게 떠맡기면 마무리를 하지 않을까?

쪽파 다듬기가 파김치 담그기의 90%

 

 

 

혼자 슬그머니 텃밭으로 나왔다. 밑거름을 짝 깔아놓아 밭이 푹신푹신하다. 이틀 후 이웃집 아저씨가 농기계로 밭을 갈아주기로 했다. 밭이 갈리면 씨감자 넣는 것부터 올 농사가 시작될 것이다. 밭 가운데에 있는 쪽파부터 정리해야 한다. 일부는 뽑아서 파김치를 담고, 가장자리로 옮겨 둘 참이다.

쪽파가 며칠 전보다 몰라보게 자랐다. 한 차례 봄비를 흠뻑 맞은 뒤로 파릇파릇해지고 대도 통통해졌다. 봄에 자란 쪽파는 봄기운을 듬뿍 담고 있는 듯싶다. 지금 파김치를 담가먹으면 딱 알맞을 것 같다.

대야 가득 쪽파를 뽑았다. 우선 파뿌리를 칼로 잘라냈다. 뿌리가 내 흰머리처럼 하얗다. 파뿌리는 부부의 백년해로를 비유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파뿌리를 백발에 비유하기 때문이리라.

파는 비타민과 칼슘, 철분 등이 풍부하다. 위장기능을 돕고 감기예방에 효과가 있다. 약방에 감초처럼 음식을 만들 때 맛을 내는 양념거리로 빠지지 않는다. 특히 생선요리를 할 때는 비린내를 없애주기 때문에 꼭 사용한다.

파는 대파와 가는 쪽파로 구분한다. 보통 대파는 씨를 뿌린 뒤 실파를 옮겨 심어 키운다. 그런데 쪽파는 알뿌리를 심어 재배한다. 대파는 요리할 때 야채로 사용하고, 쪽파는 파김치를 담가먹는다. 파김치는 맛과 향이 좋아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대야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거실에 신문지를 넓게 깔았다. TV를 보며 일삼아서 쪽파를 손질할 셈이다. 아내는 아직도 컴퓨터자판을 두드리며 열심이다.

 

 

 

쪽파 다듬는 일이 만만찮다. 하나하나 겉잎을 벗겨내고 끄트머리 지저분한 부분을 잘라내야 한다. 성질 급한 사람은 쪽파 다듬는 일이 번거로워 파김치고 뭐고 때려치울 것 같다.

김치 담글 때 김칫거리 손질하는 게 더 힘이 든다. 쪽파를 다듬어 놓으면 파김치 90%는 담근 거나 마찬가지이다.

아내와 일을 나눠하면...

한 시간 남짓, 쪽파를 다듬고 있는 데 아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왔다. 손질한 쪽파가 대야 가득한 것을 보고 입을 떡 벌린다.

"여보, 미안. 나랑 같이 다듬자."
"파 담는 거 보통 일이 아니네."
"힘들었지? 그러니까 여자들 일하는 것도 해봐야 한다니까."
"그래서 오늘 열심히 하잖아."
"이렇게 도와주면 김치 담는 것, 일도 아냐."


아내는 쪽파, 부추, 달래와 같은 것을 다듬을 때 좀 도와주면 얼마나 좋으냐고 한다.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손질해서 파는 푸성귀를 사먹는 게 어찌 보면 엄청 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장날 할머니들한테 물건을 살 때는 값을 깎지 않는다.

일을 거드는 척 하더니만 아내가 또 컴퓨터 앞으로 간다. 아직도 하던 일이 덜 끝났나? 결국 깨끗이 씻는 것까지 책임을 지란다. 오늘은 철저히 부려먹는구먼!

흐르는 물에 여러 차례 씻어내자 검불이 쓸려나가고 깨끗해졌다. 차가운 물에 몇 차례 헹궈내자 더욱 싱싱해 보인다.

"여보 다 했어. 이제부턴 당신 몫이야."

아내를 불러냈다. 아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나왔다. 지금부터는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 발휘할 모양이다.

파김치는 액젓에 풀을 쒀 담근다

 

 

 

아내가 파김치를 담그는 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우선 멸치액젓으로 숨을 죽이는 것이 여느 김치 담글 때와 다르다. 소금으로 절이면 숨이 푹 죽어 파김치가 쓴맛이 나 좋지 않다고 한다.

양파를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버무려 살살 비빈다. 아내가 뭔가 빠뜨린 듯, 하던 일을 멈춘다.

"당신, 마늘을 넣지 않았지?"
"파김치는 마늘을 넣지 않는 거야. 파 자체가 매운데 마늘까지 들어가면 별로야. 찹쌀 풀을 넣어야 하는데 그걸 잊어먹었네."


 

 

 

 

풋내를 없애고 젓국과 어울리려면 찹쌀 풀을 쒀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냉동실에 보관한 찹쌀가루로 죽을 쒀 집어넣는다. 간은 소금을 넣지 않고 액젓으로만 한다. 요리조리 뒤적이니 빨갛게 물든 파김치가 완성된 모양이다.

아내가 먼저 간을 본다. 마음에 드는지 얼굴 표정이 밝아진다.

"집에 막걸리 없나? 이것도 일이라고 목이 칼칼하네!"

며칠 전 일하다 먹고 남은 시원한 막걸리가 생각났다. 사기그릇에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아내가 양념이 묻은 파김치를 둘둘 말아 안주로 건네준다. 알싸한 맛이 맵기는 하지만 술안주로 그만이다.

이른 봄부터 고개를 내밀고 올라온 파의 기운이 막걸리와 함께 온몸에 퍼진다. 며칠 후 노랗게 익으면 봄 입맛을 살리는 음식으로 안성맞춤일 것 같다. 김치통에 파김치를 꾹꾹 눌러 담는 아내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감돈다.

 

 

출처 : 다시 만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
글쓴이 : 바다만큼 원글보기
메모 : v파김치